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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09. 축제 현장, 영어로 인한 설움

요약

내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행사 날이 다가왔다. 분명 기대되고 설렐만도 한데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행사장으로 가면서도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의심하기 바빴다. 절대 실수하지 않기를 수백번 바라고 또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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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11월 ]

내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행사 날이 다가왔다. 분명 기대되고 설렐만도 한데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행사장으로 가면서도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의심하기 바빴다. 절대 실수하지 않기를 수백번 바라고 또 바랐다.

내가 참여했던 행사는 <East Malvern Food & Wine Festival>이었다. 행사 이름과 같이, 음식과 와인을 제공하고 판매하는 부스들이 주를 이루었다. 한쪽에는 직접 제작한 비누와 같은 상품들을 판매하기도 했으며, 다른 쪽에는 작은 무대가 있어 공연들을 볼 수 있었다. 이 모든 프로그램은 말번(Malvern)에서 활동하는 분들에게 우선으로 기회를 제공하며, 전체적으로 지역 사회와의 협력을 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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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주 참여자는 그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가족들이었으며, 어린 아이들이 해맑게 뛰어다니는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행사장에 도착한 나는 인포메이션 부스에 있으라는 지시를 받고 그 곳으로 갔다. 인포메이션은 행사장의 손님을 가장 처음 맞이하는 부스인 만큼, 행사 팜플렛이 비치되어 있었고, 와인잔과 티켓도 준비되어 있었다. 그 곳에서 혼자 와인잔과 티켓을 세팅하고 있었는데 한 여성이 다가왔다. 그녀는 자원봉사로 참여한 20대 초반 대학생 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내 소개를 했다. 호주에 처음 도착한 후 그 날까지 2주라는 시간 동안 수없이 자기소개를 했었기 때문에 마치 대본을 줄줄 외듯 능숙하게 말할 수 있었다. 따라서 그녀는 내 말을 듣더니 영어를 잘 한다며 칭찬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소개 후에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은 아직 서툴렀고, 자유롭게 영어를 구사하거나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에 머지않아 내 실제 영어실력이 들통나고 말았다. 그녀는 당황하더니, 나와 대화하는 것을 멈추고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말 없이 세팅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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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용히 인포메이션 부스에서 와인잔 안에 티켓을 넣으며 세팅을 했다. 

조금 뒤, 마곳이 나에게 와서 무엇을 해 달라고 지시를 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물건으로 보아 안내판을 어디에 붙이라고 요청한 것 같은데, 그녀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나는 순간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자 마곳이 "Do you understand me?"라고 물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자원봉사자가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마곳에게 말했다.


Not really.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자원봉사자들이 인포메이션 부스로 왔다. 이미 아침의 상황으로 모든 자신감을 상실한 나는 그들과 인사만 한 후 구석에서 조용히 일을 했다.  


서러웠다.
영어가 내 모국어가 아니라서 어려웠을 뿐인데, 마치 내가 큰 잘못을 한 것처럼 느껴졌다. 마곳은 이해가 간다. 나는 일 하러 온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잘 알아 듣고 일을 처리할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처음 만났던 자원봉사자와의 상황은 조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분명 초반에 분위기 괜찮았다. 하지만 내가 영어로 두어번 버벅대는 순간, 나를 향한 그녀의 눈빛이 차가워졌고 자기 할 일에 집중한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실수라고 하기에는 어려울만큼 정말 기본적인 일상 이야기들이었다. 아마도 그녀는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답답해 하고 한심한 존재로 여겼나 보다. 나도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며 어울리고 싶은데, 언어로 인해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당연하면서도 잔인하게 느껴졌다. 이것이 나는 '영어 차별'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렇게 같이 일 하는 사람들과도 의사소통이 어려운데 과연 내가 손님들을 잘 대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손님들의 말은 더욱 더 알아듣기 어려웠다. 그들이 건네는 말들은 정말 단순했을 것이다. 이 행사는 무엇인지, 어떤 프로그램들이 마련되어 있는지, 참여는 어떻게 하는지 등 행사 참여 전반에 관한 질문이 주를 이뤘을 것이다. 하지만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아무 일도 처리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부스 구석에서 조용히 와인잔을 세팅하는 것뿐이었다. 이 분야에 업무 경험이 있는 나는 적어도 자원봉사자들보다 할 수 있는 것이 많았겠지만, 언어로 인해 그들 보다 못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 정말 비참했다. 아무리 내가 가진 기술이 있어도 보여줄 수 없었다. 


마치 나는 갓난아기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차라리 진짜 아기였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도 아기에게 언어가 유창할 것을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알아듣지 못하는 상황에 있어도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며, 계속 그 상황에 노출됨으로써 실력도 금방 향상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기가 아니었다. 다 큰 성인이었다. 여행자도 아니었기 때문에 배려받을 수 있는 위치도 아니었다. 심지어 그곳은 일터였다. 당연히 영어를 잘 해야만 했다. 하지만 나의 영어 실력은 나를 향한 기대보다 현저하게 차이가 났기 때문에 그 구멍을 메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부족한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그 차가운 시선을 견뎌야만 했는데, 그 상황 속에 있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었다. 그렇지만 견디지 않고 포기하면, 영어에 노출되기가 힘들기 때문에 부족한 점을 극복하기가 어려워진다. 이러한 이유로 어렸을 때 이민을 가야 언어를 배울 수 있다고 하나 보다.

나는 자원봉사자 무리 뒤에 있는 것이 너무 숨막혔고 힘들었다. 그리고 인포메이션 부스 특성상 손님들의 방문이 잦았는데, 상대할 수 없었기 때문에 혹시라도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까봐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나는 세팅이 끝나자마자 그 곳을 벗어나 대일에게 갔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대일을 졸졸 쫓아다니며 그녀가 시키는 잡일들을 맡아 처리했다.

사실 행사에서 정말 내가 한 일은 별로 없다. 물건 전달하기, 세팅하기, 정리하기 등등..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내가 없었어도 정말 잘 돌아갔을 것이다. 나는 행사가 진행되는 매순간 도망가고 싶었지만, 이렇게 시작한 이상 끝날 때까지는 버텨야만 했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참았다.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잡다한 일들을 계속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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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쉬는시간을 받아 혼자 점심을 먹으며 공연을 구경했다.

어느 덧 행사가 끝나는 6시가 되었다. 대일에게 가서 또 어떤 일을 맡아 할 수 있을지 물었는데, 그녀는 자기도 할 일이 없다며 마곳한테 가서 물어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인포메이션 부스에 앉아 있는 마곳에게 다가갔다. 부스 안에는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티켓을 정리하며 돈을 계산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물었다. 그러자 그녀가, 행사가 끝났으니 집에 가도 되고 남아서 도와줘도 된다고 했다. 

내 머리는 알았다. 행사가 끝남과 동시에 정리를 해야 하니 남아서 도와줘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행사 마무리를 같이 하는 것이 참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바람직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정말 자신이 없었다. 행사에 남아서 돕는다고 하면, 자원봉사자들에게 어떻게 하는 지 물어보며 같이 일을 처리해야 하는 것이 뻔했다. 하지만 이미 한 번 그들의 차가운 시선을 맛본 나로써는 다시 상대할 자신이 없었다.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나를 얼마나 우습게볼까..


나는 그것을 또 다시 견딜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결국, 그녀에게 집에 가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3일 동안 수고했다는 명목으로 돈을 챙겨주었고, 제대로 인사를 나누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그래도 감사한건, 대일과 피오라는 언제나 나를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주었다는 것이다. 내가 먼저 요청하지도 않았음에도 항상 쉬운 단어를 사용하여 천천히 말을 해주었고, 언제나 나를 배려해주며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피오라는 나에게 마곳은 대단한 사람이니, 계속 연락을 이어가라며 조언을 해주기도 했지만, 행사 이후로 안 그래도 없던 자신감이 바닥을 친 바람에 스스로가 부끄러워서 마곳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그렇지만, 반년 뒤 나는 그녀에게 메일을 보내게 된다.


[원문] "[호주워홀] ep9. 축제 현장, 영어로 인한 설움 (영어 차별?)"
별처럼 밝게 빛나는(퐁당) https://dreamingstars.blog.me/221580580439

오스트레일리아에 사는

퐁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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